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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의 의미
david lim
2013. 12. 9. 10:25
만델라를 이 세상에서 떠나 보내며
이 시대를 변화시켰던 위대한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해 본다
희망을 잃지 않았던 사람
끝까지 사랑을 놓지 않았던 사람
역사의 주관자 되는 하나님을 신뢰하였던 사람
그러기에 용서를 실천했던 사람
만델라는 우리에게
당신도 그 길을 가자고 권유한다
해 맑은 웃음을 지으며...
만델라에 관한 기사를 인용해 본다
[만델라 서거] "마디바(존경받는 어른)가 준 행복에 감사" 춤추고 노래하며 축제같은 追慕
"흐르는 눈물을 나도 어쩔 수가 없군요."
7일(현지 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호튼(Houghton)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자택 앞에서 만난 줄리아 헤이튼(61)씨는 손으로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영국계 백인 여성인 그는 이날 처음 본 흑인 남성 아에낭(35)씨의 손을 꼭 쥐고 추모객 사이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헤이튼은 "만델라는 흑인뿐 아니라 백인에게도 '타타'(아버지를 뜻하는 현지어)였다"고 말했다.
호튼 12번가와 4번가 교차로는 만델라의 사진과 초상화, 꽃을 든 추모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특히 어린 자녀의 손을 이끌고 온 가족 단위 추모객이 많았다. 무사딘 수마디(32)씨는 "네 살 딸에게 지금 마디바(만델라의 애칭)를 설명하긴 어렵지만 나중에 자라면 이 순간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델라 자택 인근에 모인 추모객들은 '만델라 같은 사람은 없어요'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중간 중간 춤을 추며 손을 들어 손뼉을 쳤다. 수마디는 "마디바가 우리에게 주고 간 행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즐겁게 노래하면서 감사를 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8일 오전 브라이언스톤 감리교회에서 열린 추모 예배도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밝은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행복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타타도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이컵 주마 대통령은 "만델라는 어린이 교육에 항상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만델라에 대한 추모는 종교와 세대의 장벽도 넘었다. 이슬람교도인 대학생 파라즈 마헤르(22)씨는 "나는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차별 정책)를 겪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마디바가 있었기에 지금 내가 대학을 다니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인 교사인 캐러니 맥납(24)씨는 "지난 월드컵 때 만델라가 환하게 웃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만델라가 공식 석상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었다.
6m 높이의 만델라 동상이 서 있는 요하네스버그 샌튼의 만델라 광장에는 추모객이 두고 간 꽃이 화단처럼 펼쳐졌다. 주변 레스토랑 종업원들도 단체로 방문했다.
프랑스 관광객 피에르 가농(43)씨는 "내가 남아공에 있는 동안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며 "너무나 슬퍼서 꽃을 사 들고 왔다"고 말했다.
인근 서점에선 만델라 전기를 한 번에 3~4권씩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점 직원 제임스 레나씨는 "만델라 관련 책은 재고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만델라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다는 국민의 요구가 빗발치자 남아공 정부는 만델라의 유해를 일반에 공개하기로 했다. 현재 시신이 안치된 군(軍) 병원에서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유니언 빌딩까지 약 10㎞ 구간에서 운구 행사를 갖는다. 이후 유리관에 안치해 11~13일 일반 조문객을 받을 예정이다. 앞서 오는 10일에는 요하네스버그 월드컵 경기장(FNB 스타디움)에서 약 5만명이 참석하는 추도식도 열린다.
남아공 정부는 8일부터 운구가 지나갈 주변 도로를 단장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해외에 있던 만델라의 가족들도 모두 귀국했고, 유해가 안치될 만델라의 고향 쿠누를 오가며 장례 준비에 들어갔다. 만델라 가족 대변인은 "대지의 아들, 위대한 인간이 우리 곁을 떠났다"며 "그는 생전에 안락한 바오밥 나무의 그늘처럼 우리에게 보호막이 돼 줬다"고 말했다.
남아공 정부는 추모 행사의 인원수와 조문 절차를 엄격하게 통제할 계획이다. 참석하지 못하는 국민을 위해 추도식 전 과정은 TV로 생중계하기로 했다. 만델라의 장례식을 취재하기 위해 요하네스버그와 프리토리아에 외신 기자 약 2000명이 왔다고 현지 언론인 시티 프레스는 보도했다.
요하네스버그·프리토리아=이성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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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변화시켰던 위대한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해 본다
희망을 잃지 않았던 사람
끝까지 사랑을 놓지 않았던 사람
역사의 주관자 되는 하나님을 신뢰하였던 사람
그러기에 용서를 실천했던 사람
만델라는 우리에게
당신도 그 길을 가자고 권유한다
해 맑은 웃음을 지으며...
만델라에 관한 기사를 인용해 본다
[만델라 서거] "마디바(존경받는 어른)가 준 행복에 감사" 춤추고 노래하며 축제같은 追慕
"흐르는 눈물을 나도 어쩔 수가 없군요."
7일(현지 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호튼(Houghton)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자택 앞에서 만난 줄리아 헤이튼(61)씨는 손으로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영국계 백인 여성인 그는 이날 처음 본 흑인 남성 아에낭(35)씨의 손을 꼭 쥐고 추모객 사이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헤이튼은 "만델라는 흑인뿐 아니라 백인에게도 '타타'(아버지를 뜻하는 현지어)였다"고 말했다.
호튼 12번가와 4번가 교차로는 만델라의 사진과 초상화, 꽃을 든 추모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특히 어린 자녀의 손을 이끌고 온 가족 단위 추모객이 많았다. 무사딘 수마디(32)씨는 "네 살 딸에게 지금 마디바(만델라의 애칭)를 설명하긴 어렵지만 나중에 자라면 이 순간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델라 자택 인근에 모인 추모객들은 '만델라 같은 사람은 없어요'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중간 중간 춤을 추며 손을 들어 손뼉을 쳤다. 수마디는 "마디바가 우리에게 주고 간 행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즐겁게 노래하면서 감사를 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8일 오전 브라이언스톤 감리교회에서 열린 추모 예배도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밝은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행복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타타도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이컵 주마 대통령은 "만델라는 어린이 교육에 항상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만델라에 대한 추모는 종교와 세대의 장벽도 넘었다. 이슬람교도인 대학생 파라즈 마헤르(22)씨는 "나는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차별 정책)를 겪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마디바가 있었기에 지금 내가 대학을 다니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인 교사인 캐러니 맥납(24)씨는 "지난 월드컵 때 만델라가 환하게 웃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만델라가 공식 석상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었다.
6m 높이의 만델라 동상이 서 있는 요하네스버그 샌튼의 만델라 광장에는 추모객이 두고 간 꽃이 화단처럼 펼쳐졌다. 주변 레스토랑 종업원들도 단체로 방문했다.
프랑스 관광객 피에르 가농(43)씨는 "내가 남아공에 있는 동안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며 "너무나 슬퍼서 꽃을 사 들고 왔다"고 말했다.
인근 서점에선 만델라 전기를 한 번에 3~4권씩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점 직원 제임스 레나씨는 "만델라 관련 책은 재고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만델라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다는 국민의 요구가 빗발치자 남아공 정부는 만델라의 유해를 일반에 공개하기로 했다. 현재 시신이 안치된 군(軍) 병원에서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유니언 빌딩까지 약 10㎞ 구간에서 운구 행사를 갖는다. 이후 유리관에 안치해 11~13일 일반 조문객을 받을 예정이다. 앞서 오는 10일에는 요하네스버그 월드컵 경기장(FNB 스타디움)에서 약 5만명이 참석하는 추도식도 열린다.
남아공 정부는 8일부터 운구가 지나갈 주변 도로를 단장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해외에 있던 만델라의 가족들도 모두 귀국했고, 유해가 안치될 만델라의 고향 쿠누를 오가며 장례 준비에 들어갔다. 만델라 가족 대변인은 "대지의 아들, 위대한 인간이 우리 곁을 떠났다"며 "그는 생전에 안락한 바오밥 나무의 그늘처럼 우리에게 보호막이 돼 줬다"고 말했다.
남아공 정부는 추모 행사의 인원수와 조문 절차를 엄격하게 통제할 계획이다. 참석하지 못하는 국민을 위해 추도식 전 과정은 TV로 생중계하기로 했다. 만델라의 장례식을 취재하기 위해 요하네스버그와 프리토리아에 외신 기자 약 2000명이 왔다고 현지 언론인 시티 프레스는 보도했다.
요하네스버그·프리토리아=이성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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