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된다는 것
러시아에 가 보고 싶다.
Saint Petersburg[세이트페테르스부르크;예전에 레닌그라드라고 불리던]에 가 보고 싶다.
Hermitage 박물관[에르미타즈 궁이 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음]에 가 보고 싶다.
그 곳에는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이라는 성화 원본이 소장되어 있다.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그려진 거대한 작품으로 높이가 약 2.4m, 폭이 약 1.8m 되는 크기로 고향에 돌아온 자기 아들을 포옹하고 있는 아버지와 그의 큰 아들과 세 명의 다른 인물이 묘사되고 있다.
성경 누가복음 15장 11절 ~ 32절에는 탕자의 비유라고 일컫는 아마도 크리스챤이 아닌 사람들도 너무나도 익숙하게 들어왔던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으며 그 탕자의 이야기가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손을 통해 작품화 되었다.
헨리 나우웬의 책 "탕자의 귀향"을 읽었을 때 나 또한 헨리 나우웬의 표현대로, 내 자신이 바로 작은 아들이었으며, 큰 아들이었음을 절감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는 아버지가 되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누가복음 6장 36절의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는 말씀이 바로 나에게 주신 말씀인 것이다.
헨리 나우웬이 정리한 것 처럼
"내가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작은 아들이든 큰 아들이든 간에 나는 자비로운 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나는 상속자이다.
자비하신 아버지가 되는 세 가지 길은 슬픔, 용서 그리고 관용이라고 얘기한다.
슬픔들이 기도가 된다. 이 세상에는 애통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슬픔은 세상의 죄를 보는 마음의 훈련이며, 슬픔 그 자체가 사랑을 꽃 피울 수 있는, 눈물을 자아내는 자유의 대가임을 아는 마음의 훈련이다.
하나님의 용서는 무조건적이다. 그 자체로서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마음, 전적으로 자기를 추구하지 않는 그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용서이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용서를 나의 하루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
슬픔은 나로 하여금 나의 장벽 너머를 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상실로부터 초래되는 엄청난 고난을 깨닫게 해 준다.
진정한 관용은 나에게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이 "친척"이며 내 가문에 속한다는 사실 - 느낌이 아니다 - 에 입각해서 행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영적인 아버지가 되는 것은 철저하게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권력도 성공도 인기도 쉬운 만족도 없다. 그러나 철저히 비운 바로 그 마음이 또한 진정한 자유의 장소이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본다.